Apr 13

돌아온 나오미(룻기 1:19-22절)

Posted by on Apr 13 2009 at 05:44 pm

April 05/2009

지금까지 보아온 바와같이 나오미 가족은 좀더 잘 살아보려고 모압으로 이민을 갔는데, 남편과 두 자녀가 죽고 며느리 둘 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가산도 모두 탕진되고 살길이 너무도 막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온갖 수치를 당할 것을 무릅쓰고, 마침내 두 자부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오기로 작정합니다.
그런데 두 자부들은 자기처럼 과부로 살기에는 아직 청춘이 너무 아깝습니다.
그리하여, “나를 따라 오지말고 네 민족사람과 재혼하여 잘 살아라” 고 축복기도를 하여 보냈더니, 한 며느리 오르바는 되돌아 갔는데 룻은 끝까지 따라옵니다.
그리하여 하는수 없이 룻을 데리고 지금 고향땅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물론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남미에서 미국으로 이민오신 분인데, 한번씩 자기 고향인 파라구와이에 방문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마을 입구까지 마중나온답니다. 미국에서 오니까 미제 쵸콜렛이나 캔디 하나라도 얻어먹고 싶어서이겠지요.
그래서 갈때마다 큼지막한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간다고 합니다.

이처럼 내가 성공해서 돌아갈때엔 떳떳하고, 행복하고 보람됩니다.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큰 잔치를 베풀 수도 있습니다.
혹은 동네 청년들에게도, “시골에서 이렇게 썩지말고 큰 도시로 나가서 나처럼 성공해 보아라” 고 꿈을 심어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해서 하는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음걸이는 참으로 쓸쓸하고 비참하며 그것처럼 부끄럽고 괴로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어디론가 숨고싶은 마음 뿐일 것입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경우 어떻습니까?
실패한 것 중에서도 가장 Worst 한 경우입니다.
남편과 두 아들들, 즉 자기 식구들은 다 죽었고 돈도 하나도 없는 알거지인데 무슨 낯으로 돌아온다는 말입니까? 어쩌면 고향이 가까워지면 마음은 더욱 아프고 발을 더욱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드디어 먼 발치에 자기가 살던 동네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워 꿈속에 그리던 고향이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반갑지가 않습니다. 아무에게도 자기의 이러한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네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무슨 낯으로 볼 것인가?
동네사람들이 나를 보면 무어라고 할까?
여자가 얼마나 팔자가 셌으면 남편과 두 아들 마져 다 죽게 했을까?
얼마나 큰 죄를 졌으면 애도 하나 낳지 못하고 다 죽었을까? 라는 등등의 비평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먼길, 매우 피곤한 길인데, 동네가 가까워질수록 이런 저런 생각으로 나오미의 발 걸음은 더욱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로 돌아오는 자는 복된자입니다.
성공해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볍겠지만, 실패해서 돌아오는 길은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요,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실패하고서도 돌아오는 사람은 참으로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돌아와야만 그 실패를 극복할 수 있고, 돌아와야만 고통이 멈추고, 돌아와야만 새로운 시작을 할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인지라 때로는 잘못도 저지르고 실수도 범합니다.
.그리하여 이웃과도 관계가 끊어지고, 심지어는 탕자처럼 아버지 집을 떠나고, 가족 그리고 아버지와의 관계가 끊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다는 것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은혜의 기회입니다.

혹시 이웃과의 관계가 불편하거나 끊어졌습니까?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도 불편해졌습니까?
그렇다면,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처럼, 주님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자존심 상하고 수치스럽고 괴롭더라도 주님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불편했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며, 이웃과의 단절된 관계를 다시 이어 주실 것입니다.

마침내 나오미와 그녀의 며느리 룻은 베들레헴 자기 옛 고향동네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1971년 저희 누님께서 미국에 간호원으로 취업이민 오셨다가, 1975년에 잠시 한국에 다니러 오셨었습니다.
미국을 갔다가 왔다는 것은 우리 동네가 생긴 이래로 처음 있었던 일인지라, 동네 사람들이 미국에서 온 사람좀 보자고 모여든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몇년 살고왔다고 해도 이처럼 난리인데, 그 동네의 유지였던 나오미 가족이 십수년 전에 모압으로 이민갔다가 돌아왔으니 이것은 정말 큰 사건 아닙니까?
아마도 베들레헴이 생긴 이래로 가장 큰 사건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동네사람들이 나오미를 보며, “이가 나오미 아니야?
이게 어찌된 일이야?
이민가서 잘 산다고 들었는데, 쯧쯧 고생 퍽 했는모양이고만.
그리고 남편은? 애들은?
여기 같이온 색시는 누구여?
잠시 다니러 온거여? 아니면 살러 온거여? 이삿짐은 다 어디있고 사람만 왔어?

궁금증에 사로잡혔던 동네 사람들은 계속해서 질문을 퍼 부었을 것입니다.
그때 나오미는 창피를 무릅쓰고 동네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처지를 고백합니다.

20-21절에,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이처럼, 자신의 처지를 하나님께 철저히 인정하고 고백할수있는 자는 복된자 입니다.
나오미는 아주 작심한듯 담대하게 동네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처지를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보시다 시피, 나는 아무 가진것도 없이 빈털털이 입니다.
당장 묵을 숙소도 음식을 살 돈도 없습니다.
내 인생에 즐거움은 다 사라지고 오직 쓴뿌리만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쓴 뿌리 즉 마라라고 부르십시오.

.그녀는 치부를 드러내는 것 만큼이나 부끄럽고 수치스럽지만 전혀 감추거나 꾸며서 말하지 않고, 자신은 아무것도 남편도 자녀도 그리고 돈도 없는 알거지라고 솔직히 다 털어 놓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비참하게 된 것은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라고 합니다.
자신의 가족이 이렇게 몰락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지금 동네사람들 앞에서 말하지만, 사실은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오미는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회개를 하게됩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 내가 좀더 잘 살아 보겠다고 모압으로 이민갔는데, 잘 살수 있을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치셨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이민 갈 때에는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 즉 알거지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신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아무런 연고없이, 아무런 목적없이 치시지 않으십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를 아무런 연고도 없이 왜 괴롭히십니까?
오히려 고생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우시는 하나님 이신데……

그런데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징벌하셨다 고 합니다.
이것은 신앙 성숙을 위한 연단이 아니라, 잘못에 대한 댓가를 치르는 것이라 고백한 것입니다.
무슨 죄인지 구체적으로 그 명목을 밝히지는 않지만, 나오미는 자신이 겪는 그 고난이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한,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결국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기 죄를 인정하고 회개한 것입니다.

또한 나오미의 이러한 고백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넘어서, 그분의 절대권을 인정하는 고백이었습니다.
나를 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 이신데, 내가 어떻게 하나님 이것은 아닙니다, 너무 먹울합니다 라고 하나님을 원망할수 있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괴롭게 하시겠다는데, 내가 무슨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지금까지 자신이 의지하였던 것들을 모두 다 잃은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사람들 앞에 자신있게 고백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짧은 한마디 고백속에, 나오미의 한 맺힌 심정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내가 왜 애당초 베들레헴을 떠났던고.
.차라리 베들레헴에서 좀 덜먹고 좀 덜 쓰며 살았으면, 남편도 잃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나도 여러분들 중의 하나처럼, 아니 여러분들보다 훨씬 부유하게 잘 살고 있었을 텐데……
.또한 남편이 죽었을때, 왜 진즉 서둘러서 고향으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지 않았던고.
.그랬었으면 두 아들들은 죽지 않았을 텐데……
.이민 갈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고, 그래서 정말 크게 성공하여 돌아올 지신이 있었는데, 종국은 파멸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께달은 것입니다.

.나오미의 인생처럼, 세상 방법이 처음에는 옳은 것 같습니다.
순조롭게 잘 풀려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세상 방법으로 빠져 들어가지, 처음부터 안 맞아 들어가면 누가 세상 방법을 택하겠습니까?
.그런데 종국에 가서는, 그 길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 길이요 실패의 길임을 성경은 계속해서 경고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다 잃은 것은 아닙니다.
남편도 잃고 자녀들도 잃었고 재산도 다 잃었지만,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된 것입니다.
나오미가 모압에 이민갔다가 성공하여, 정말 금의환향했더라면 하나님을 잔정으로 체험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진 고난,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 할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그녀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된 것입니다.

남의 이야기처럼 들으니까 쉽게 넘길수 있지, 남편은 물론 자녀들 까지도 모두 자기보다 먼저 보낸, 그러한 서러움과 슬픔을 어떻게 가슴에 묻고 살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가슴속에서는 날마다 서러움의 피눈물이 흘렸을 것입니다.
이러한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든 혹독한 시련 속에서 나오미의 신앙은 펄펄 끓는 용광로에서 불순물이 깨끗이 다 빠져나가고 남은 정금처럼 연단되어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견디기 힘든 아프고 서러운 고난이 없이도 정금같이 단련된 믿음을 가질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더 크고 좋은 제목으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지금 톱질하시고 다듬고 계신다는데 내가 그것을 어떻게 피할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려움이 닥치고 환난이 닥친다 할지라도 욥의 고백처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라는 고백과 함께 담대하게 견딜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비천한 중에나 풍족한 중에나 늘 하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심을 잊지 않고,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듯이 우리의 뿔을 높이시고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되 차고 넘치게 부어 주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께로 돌아오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22절에,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했습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에, 보리추수가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베들레헴 주변 온 들이 온통 누렇게 잘 영글은 보리로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금까지의 징계가 끝나고 새로운 축복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장 먹을것이 없었던 나오미 가족, 돌아온 그 때가 만일 추운 겨울이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직 곡식이 여물기 전이었으면, 들이나 사방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때였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올 때가 추수할 때였다는 것,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자기 밭이 아니니 모두 자기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리를 베고난 그 뒤를 쫓아다니며 이삭만 줏어도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자신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축복이 아니라 부스러기 축복만 내게 임한다 할지라도, 내가 풍족히 넘치게 쓸수는 없지만 연명은 해 가게 하실 것이라는 암시입니다.

그리고 그 암시대로,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 가족은, 마침내 보리 이삭을 줏어 연명을 하게 됩니다.
물론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이지 얼마 되지는 않습니다.
자기가 갈고 엎어서 씨뿌리고 경작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밭에서 이삭을 줏어서 먹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보여 주십니까?
이제는 네 방법대로 네 계획대로 나아가지 말라, 네 방법대로 나갔을 때 얻은 것이 무엇이냐, 네 손에 남은 것이 무엇이냐?
이제는 나를 따라라 내 방법대로 하라 그러면 네가 생각하지 못한 나의 방법대로 축복을 내려 주리라 는 약속입니다.

우리 잠시 눈을 감고 주님 앞에 우리 자신들을 내 보여 드리십시다.
나의 삶 가운데 아직도 주님께로 온전히 돌아오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그것은 무엇인가?
주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네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내게로 돌아오라.
네 삶을 나에게 맡겨 버려라.
그리고 나와함께 다시 시작하자.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My son! You can start all over with me.

찬양을 들으시며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통성으로 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은 그렇게 하십시오.

왜 나만 겪는 고난인가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신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 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지않아요
주님이 나와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수 있지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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