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23
예수님의 리더십
Y 씨는 오래 전에 미국으로 이민와서 성공한 이민 1세다. 그 당시 많은 분들이 겪었듯이 그 역시도 아무런 자본도 없이 와서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오직 근면하고 성실함으로 삶을 일구어왔다. 이제 경제적으로는 부러울 것이 없지만, 대다수의 초창기 이민자들이 겪었던 애완이 그의 인생에도 그대로 그려져 있었다.
원래 불교집안에서 자란 그는 삶에 여유가 좀 생기자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힘들게 살 때에는 인생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는데, 삶에 여유가 생기다 보니 자신이 누군가에 대한, 어디서 부터 시작되어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삶에 대한 허무감이 들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기독교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침 친구의 권유도 있고 해서 자연스럽게 교회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불행하게도 다니던 교회가 얼마 되지 않아 분쟁이 생기더니 결국 갈라지고 말았다.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교인들은 더 착하고 이해심이 더 많을줄 알았더니 그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때 받은 상처가 너무도 커서 교회에 더이상 발걸음을 하고싶지 않았다.
그래도 교회에 한번 발을 들여놓았는지라 몇주간 안다니니까 마음이 허전하다. 그런데 때마침 주변 사람들로 부터 존경받는 장로님 한분을 만나게 되었다. 교제해 보니 인품도 좋으시고 신앙도 깊으신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장로님이 다니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장로님이 돈을 꾸어달라 하여 주었다. 알아서 주겠지 하였더니 영 갚지를 않는다. 그리고 그 장로님 역시도 교회에 문제가 생기자 세상사람들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슬그머니 발을 뺐다고 한다.
이렇게 교회에 대한 자신의 아픔과 실망을 털어 놓으면서도 아직도 미련은 많이 있음이 역력했다. 그것은 죽음의 문제와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고 채워줄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뿐이요, 주님이 임재하시는 교회밖에는 없다는 증거도 되었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으려고, 텅빈 마음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채우려고 교회에 나왔다가 오히려 상처를 받고 아픔을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교회 주변을 맴돌게 되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 안됐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그 원인을 제공한 본인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이민교회의 현실을 그대로 고발하는 것 같아 목사로서 변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꺼낸 것이 삭개오 이야기다:
삭개오 라는 사람 아시는지요? 성경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데요. 여하튼 그 사람은 오늘날 큰 도시의 세무서장으로서 돈을 많이 모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주변에 친구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인색하였고 또한 부당하게 징수한 세금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자들을 향한 일반적인 비판들 아닙니까? 여하튼 동네 사람들은 그를 보면 손가락질 하면서 피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라는 분이 자기가 사는 동네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분을 꼭 만나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눈총이 싫어서 계속해서 망설이다가 그 분이 그 동네를 거의 다 지나갈 때에야 용단을 내려 그 분의 행렬을 급히 뒤쫓아 갑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분을 뺑 둘러 에워쌓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분을 만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체면몰수하고 옆에 있던 나무로 휙 올라갑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십니다. 그러자 같이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나쁜 죄인의 집에가서 묵겠다는 말인가 하면서 예수님을 비방합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너무도 기뻐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왜 삭개오가 지금까지 아주 열심히 긁어모은 돈을 절반이나 내 놓았을 까요? 왜 그가 이처럼 완전히 바뀌어 버렸을까요? 아마도 주변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비방하며 수근거릴때 삭개오는 예수님이 과연 누구를 택할 것인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잃을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군중을 택할 것인가? 라며 예수님을 주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무리대신 자기 한사람을 택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감동된 삭개오는 예수님 앞에 자기 재산을 털어 놓았고, 예수님의 진정한 친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에 정착하고 신앙생활을 잘 하시려면 불행하게도 삭개오가 겪은 두가지의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우선 나 같은 사람이 교회에 나가면 주변 사람들이 비웃지는 않을까? 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사람들에 가려서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선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평가에 좌우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만 생각하십시오. 또한 장로님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저도 바라보지 마십시오. 사람을 보면 실망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 말을 하면서도 내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소자야, 그래도 너는 나를 따르라” 고 하셨을까? 바울 사도께서는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하셨는데, 나는 언제나 그렇게 말할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