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03
예수님의 리더십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1년 동안의 수행능력을 두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토론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아마도 그 이유는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강하게 기대를 걸었던 이유는 살기가 그만큼 힘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하여 다양한 계층에서 각색의 목소리를 내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있게 들리는 말은 대통령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인 것 같다. 이제는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여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대통령의 하는 일에 관심도 없다고 하였다. 들어 보았자 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믿고 선출한 분으로부터 이미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더 큰 상처를 받을까 두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에서는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칭찬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도 비교적 높게 발표되었다. 그러자 여론조사 마져도 조작된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대통령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언론기관도 통제하고 있다는 간접적인 시위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에게 바른 조언을 해 줄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는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대통령께서 의도적으로 멀리 하였던지 아니면 보좌진들이 대통령 눈치를 보며 가신들로 변했든지 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사상 최대의 지지로 등극하신 분이 이렇게 빠른 시일내에 신뢰를 잃는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물론 작심하고 자포자기 겪으로 나라님의 일에 무관심 하겠다는 백성들에게도 책임이 크다. 그렇다고. 나라의 최고 지도자요 최고 행정 책임자로서 국민들의 이러한 원성에 촛불 시위자와 데모대들 탓만을 하고있을 수는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가장 시급한 문제를 포용의 부족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 분이 과감하게 포용하지 못하는데에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 것이며 정당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을 실추시키는 주 원인이라면 아무리 위험부담이 크다 할지라도 과감하게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할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속히 박 대표와 화해하고 미네르바를 풀어 즐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는 박 대표가 꼭 좋아서라기 보다는 그리고 미네르바의 예언이 정확히 맞아떨어져서 라기 보다는 어쩌면 박대표가 홀대 받는 모습이나 미네르바의 구속된 모습에서 자신들의 아픔을 대리 체험할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잘못을 떠나서 최고 권력자가 힘없는 백성을치는 모습으로 비치면서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커지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일을 잘한다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따라 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아니된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어중이 떠중이 그 중간에서 눈치를 보며 표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성패는 이 중간에 있는 자들을 어떻게 이끌어가느냐에 의하여 결정된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일을 해도 나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따라주고 나를 싫어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대 다수가 나를 지지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중간에 있는 나를 반대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나를 선뜻 따르지도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시키고 설득하느냐에 따라서 성패가 좌우된다.
누가복음 9:49-50절에,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하였습니다. 이 짧은 대화속에서 예수님의 리더십을 엿볼수 있다. 나를 반대하지 않는 자들은 나를 위하는 자라고 하셨는데, 내가 마음을 크게 품지 않으면 받아드리기 어려운 말씀이다. 물론 나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위하는 자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 말씀을 조금 다른 각도로 이해한다면 나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을 나를 위하는 자로 만들어라 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결혼전에는 이 사람 아니면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 부부도 한해를 못넘기고 “이세상 누구하고도 살수 있지만 당신만은 안돼” 라며 싫증을 내는 것이 사람의 본능일 것이다. 이 말의 대상을 목회자로 바꾸어도 그리 틀리지는 않는 말 일 것이다. 하지만 본능탓하고 교인들 탓만 하고 있을수는 없지 않겠는가? 대통령을 향한 질책이 꼭 나에대한 질책으로 들려오는 것은 근거없는 우려만은 아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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