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01
믿는 자의 여정(룻기1-1)
.오! 살아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주님께서 이 자리에 임재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렇게 생명의 강 교회를 시작하게 하심으로 인하여 역사의 새 장을 열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생명의 강 교회를 통하여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인 무리에게 그리고 앞으로 오게 될 모든 주님의 식구들에게 그리고 온 세상에 넘치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부터는 주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룻기를 같이 보면서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주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고자 합니다.
.저희들의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주관하셔서 오직 주님께만 초점을 맞추게 하옵시며,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의 강한 역사를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질병이 고침받고, 아픈 상처들이 치유받고, 문제들을 해결받고, 진정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룻기는 룻이라는 여인의 믿음생활을 기록한 책입니다.
.성경에 여자이름이 책 이름으로 등장한 것은 에스더와 룻기 뿐인데, 에스더는 유대인이요 페르시아의 왕비로서 아주 높은 권세를 누릴수 있었던 귀족입니다.
.하지만 룻은 일찌기 남편을 잃은 과부요, 더구나 유대인들이 음란하고 추하다고 무시한 모압사람입니다.
.이 무시받던 이방 여인이, 유대 땅에 와서 가난과 역경을 믿음으로 이겨 내고, 마침내는 신앙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매우 혼탁하고 부패하고 열악했던 사사시대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게 됩니다.
.우선 오늘 본문 1절에 보셨듯이, 룻기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소개되는 사건은 사사기 때에 일어난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사기 즉 사사들이 통치하던 때라고 하면, 앞에서 잠시 예고하였듯이, 사사기 21:25절,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말씀이 사사기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각기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하고 싶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는 대로 신앙생활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도 제사장도 있었고 언약궤도 있었고 날마다 드리는 제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자기 편한 대로 하였습니다.
.오늘말로 말한다면, 교회만 다닐 뿐이지 살아가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말과 행동에 있어서 교회 안다니는 사람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는 신령과 진정한 제사가 아니라 그저 형식적인 제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야 할 하나님으로 부터 선택받은 백성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즉 자기 잘난 맛에 사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열심히 땅을 파고 씨를 뿌려 농사를 지어놓으면, 추수 때 쯤 미디안 병사들이 와서 자기 보는 앞에서 곡식들을 다 빼앗아 갑니다.
.어떤 때에는 불레셋 사람들이 떼거리로 와서 다 짓밟고 빼앗아 갑니다.
.열심히 노력을 하지만, 그 결실을 눈앞에 두고 외적에게 다 빼앗겨 살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열심히 노력을 하여도 이처럼 다 빼앗기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무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가 그들에게서 떠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형식 뿐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기 하면 디모데후서 3:5절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라고 하신 것 처럼, 경건의 모양만 있던 시대가 생각납니다.,
.그렇기에 사사기 때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전쟁, 기근, 고난, 혼란, 불안, 불안, 동족 상잔, 비극, 음란, 타락 등이 심했고 빈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 그리고 나를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보다 더 중하게 여기며 그 말씀에 늘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린도전서 1:18 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 하신 것처럼, 신앙생활이 미련한 짓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우리는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잘듣고 잘 이해하고, 깨우치는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가 아닙니다.
.이해하고 깨우치는데에서 그치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서기관들도 성경을 잘 알고, 잘 이해하고, 잘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대로 믿고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그러한 심한 책망을 받게된 것입니다.
.그러면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번 강조하시고 명령하셨듯이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 즉 믿음생활입니까?
.성경 말씀을 그저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1편을 보십시다.
.1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하였는데, 특별히 지정된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우리는 곧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우리는 기도할 때, 주님! 내가 복있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복있는 사람처럼 살게 나를 이끌어 주시고 권면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복이있는 사람의 생활 방식, 즉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 을 살아가야 합니다.
.1절은 믿음을 가진자들이 지켜야 할 소극적인 태도, 즉 조심하며 금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2절은 적극적인 삶, 매일 틈나는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며 지켜나가는 삶입니다.
.그런데 2절의 삶, 즉 날마다 틈나는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지켜 나가는 삶을 살때 1절에서 정한 도덕적 기준을 지켜나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3절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라고 하신대로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틈나는 대로 늘 읽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하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아무리 가물어도 가뭄을 타지 않고 늘 푸르고 무성하게 열매를 맺는 것처럼 인생이 풍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인생이 풍부할 뿐만이 아니라, 자녀들 후손들의 삶도 풍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복있는 자가 복있는 자답게 살지 못하면, 즉 예수 믿는 자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 열심히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4절에,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믿음생활을 충실히 하지 않으면,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즉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정처없이 떠돌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 떠돌이가 됩니까?
.사업을 해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고, 가정도 늘 불화가 생겨서 평탄하지 못하고, 건강도 헤칠수 있는등 무엇 하나 제대로 되지 못하고 평안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민온 우리에게는 더욱 실감이 나는데, 한 곳에 정 붙이고 살지 못하고 여기 저기 떠돌아 다니는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비참합니까?
.세상 사람들과 세상 방법으로 살다보니 나도 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나도 상처를 받고,
.나도 사람들에게 정직하지 못한 때가 있고, 또한 나도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하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는 누구 믿을 사람도 없고, 친구라고 해 보았자 진정한 우정이 아니라 그저 필요한때 만나는 사람들 뿐이라면 그 삶이 얼마나 메마릅니까?
.지난번 김수환 추기경께서 서거하신 후 엄청난 사람들이 조문객들이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자기가 죽으면 자기 장례식에 조문객 120명 이상이 오는 것이 자기의 목표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120명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하며 울어줄 사람들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이것이 문제 아닙니까?
.체면상 오는 사람들, 호기심에 오는 사람들, 그저 평소에 알고 지냈다는 것으로 오는 사람들 외에, 진정으로 나의 죽음을 애도해 줄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바람에 날리는 겨와같은 인생, 얼마나 메마르고 황량합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 자기 멋대로 살던 사사기 때 사람들, 그들의 그러한 삶의 결과가 어떠하였습니까?
.흉년, 영어로 보니 famine 즉 기근, 가뭄이 든 것입니다.
.인간의 재앙이 아니라 자연 재앙입니다.
.그리고 그 재앙이 유다 전역, 그리고 베들레헴까지 흉년이 들었던 것입니다.
.베들레헴이란 히브리 말로 빵을 굽는 마을이라는 뜻인데, 계속되는 가뭄에 곡식이 없어서 빵도 굽지 못하고 굶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저수지도 만들고 수로도 개설하여 비가 잘 안와도 농사들을 지어가지만, 그래도 비가 제때에 오지 않으면 농사는 커녕 살기도 힘듭니다.
.어제 신문 보니까,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가뭄 경고를 내렸습니다.
.비거 꽤 온것 같았는데, 저수지에 물이 50% 도 채 차지 않았다고 합니다.
.금년 여름에 물로 인하여 상당히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그런데 그 옛날, 즉 기원전 약 1300여년전 이 사사기 시대에는, 오죽 했겠습니까?
.비가 제때에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저수지를 만들 수 없는 모래 땅입니다.
.여러분들 팔레스타인, 특히 이스라엘 지도를 보십시오.
.비가오면 잠깐 생겼다가 다시 말라버리고 강 바닥에만 물이 조금 고이는 곳을 와디라 하는데, 우리 말로는 간헐하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와디 콰다드 와다 하다드 등 모래 땅이 많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와디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유다지방은 가뭄이 들면 농사는 커녕 사람과 짐승이 마실 물조차 구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하나님께서 내리는 재앙 중 가뭄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뭄의 피해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그 결과 짐승들과 사람들은 서서히 갈증나서 죽어갑니다.
.자기 살이라도 뜯어서 굶주린 아이 먹여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인데, 자신도 목마르지만 어린 자식들이 엄마 아빠 나 배고파 하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하튼 가뭄이 계속되자 사람이 살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유다땅 베들레헴에서 살던 어느 한 남자가 자기 처자식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갑니다.
.자기 아내와 두 아들들이라고 구체적으로 소개한 것을 보면, 이 아들들도 아주 어린애들이 아니라 어느정도 성장한 사람들 인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 남자, 베들레헴의 살림을 다 정리하여 정든 고향을 등지고 이민을 가는데, 하필 모압으로 갑니다.
.모압은 유대인들이 싫어하고 멸시하던 족속입니다.
.창세기 19:37절에 보면, 모압 (Moab) 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맏딸과 롯 사이에서 태어난, 즉 근친상간으로 인하여 태어난 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세운 나라가 곧 모압이라는 나라입니다.
.모압사람들은 요단 강 동편, 사해 남동쪽 해안의 고원지대에서 살았는데, 그모스, 바일, 몰렉등 우상을 숭배하며, 그 조상이 그럿듯이 음란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강가 높은 지역에 살았고 든든한 요새가 있어서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풍부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어서 풍성하게 농사와 목축을 하는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왕하 3:4).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막강한 군사력, 유리한 지정학적인 조건 등을 자랑하며 교만에 빠지고 타락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의 유지가 그 땅에 가뭄이 들어 먹을 것이 궁해지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유업을 버리고, 생계를 위하여 모압으로 이방 땅으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왜 유다 여러지방에서도 특별히 베들레헴 사람이, 그리고 이민을 가도 유다 백성들이 음란하고 타락하였다고 비웃던 모압지방으로 갔는지 여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설명은 다음 구절부터 나오게 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그 문제를 회피해서는 아니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 기근이라는 문제가 생기자 그 곳을 떠납니다.
.문제의 원인을 살피고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회피합니다.
.문제의 원인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았던 것에 대한 결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하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회개대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더 멀리 떠나 버렸던 것입니다.
.그 당시 기근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이민을 간 사람은 오직 이 본문의 이 가정 하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필 이 가정을 택하여 말하는 것은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그는 유다땅, 그 중에서도 믿음의 백성들이 사는, 그리고 후에 유대인들로 부터 가장 존경을 받던 다윗왕, 그리고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베들레헴 땅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이 본문의 사람은 마땅히 믿음의 본이 되어야 할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앞장서서 회피해 버립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대와 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환경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을 이끌고 가는 사람들 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성경에서의 여자는 오늘날의 교회를 상징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느 의미에서 룻은 오늘날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우리 생명의 강 교회는 이 세대의 룻처럼 이 어두운 세상에 믿음위에 굳게 서서 이 세상을 비취는, 그리고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강처럼 넘치는 교회가 되고자 시작된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 한분 한분을 이 말세에 빛을 발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으로 사용하시고자 부르신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룻기를 계속해서 보면서 시대적인 부르심에 더욱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한분 한분에게 늘 충만히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