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8

예수님의 리더십

Posted by on Feb 28 2009 at 07:36 pm

요즘들어 북한의 남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에 미국을 비롯한 한국 방위의 영향권에 있는 나라들이 긴장하고 있다. 북한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는데, 물론 이러한 협박에 유연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현 정부는 주변국 보다도 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 같아서 조금은 염려가 된다. 더 염려가 되는 것은 국민 대부분이 현실을 냉철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북한에 대하여 우호적이건 적대적이건 나름대로의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 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대북 정책에 이렇다할 성과를 거둔 것이 별로 없는데, 그것은 북한에 대한 인식과 정보부족이 주 요인으로 보인다. 북한에 식량을 가져다 주면서도 그 속내는 그 정권이 하루속히 무너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쩔수 없는 피해의식의 잔상이다. 하지만 북한의 현 정권이 우리가 기대하고 원하는 식으로 붕괴 될 것인가? 붕괴되면 거기에 대처할 만한 준비는 되어 있는가? 붕괴되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그 결과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확고한 틀이 없기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책의 미비한 점이나 잘못을 들춰내어 일순간에 바뀌어 버리는 일관성 없는 정책의 탓이 크다고 본다.

수년전에 미국의 주제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대표가 모여 평화공존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자국에 돌아와서는 서로들 “평화공존? 말도 안되는 소리지요 여러분?” 하면서 자기 지지자들을 흥분시켰던 것이 기억나는데, 혹시 남북 관계가 그런 식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는 자신에게 심각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과연 평화 공존을 원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이 정책을 위하여 위하여 우리가 능동적으로 취할 태도는 무엇인가?

만일 통일을 원하고 있다면 어떤 방식의 통일을 원하는가? 평화 통일인가? 흡수 통일인가? 평화통일은 과연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인가? 흡수 통일을 원한다면, 북한은 북한 방식으로의 흡수 통일을 원하고 있는데, 과연 이 흡수 통일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만일 이러다가 사해 연평해전 같은 것이 재발한다면 여기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 왜 북한이 요즘들어 더욱 강경하게 나오는 것일까? 그 배경은 무엇일까? 갑자기 남한을 적화 통일 시키겠다는 것일까?

북한은 지금 내부적으로 혼란기를 겪고있다. 김정일 사후에 들어설 정권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그 혼란은 가속화 될 것이다. 뱀은 허물을 벗은직후가 가장 위험하다는 말이 있다. 그 때가 독성이 가장 강해서가 아니라 가장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뱀이 허물을 벗는 동안은 몸도 쇠약해질 뿐만이 아니라 그나마 잘 뵈지않는 눈이 더욱 안보인다고 한다. 그리하여 닥치는 대로 문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만큼 불안하기 때문에.

혹 북한의 사정을 뱀의 이러한 현상에 비유한다면 무리일까? 그리고 그 혼란을 정비하기 위한 대책으로 연평해전처럼 국부적인 남침이나 도끼 만행 사건처럼 휴전선을 교란시키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면 지나친 염려일까?. 그런데 만일 북한이 이처럼 한반도를 긴장시킨다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인가?

남한은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국에서 자원을 끌어와야 하고, 또한 자체 시장도 작기 때문에 외부에 내다 팔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 자본은 몸의 피와 같다. 그런데 군의 현대화라는 이름하에 주한미군의 감축으로 가뜩이나 불안하게 생각하는 외국 투자가들이 있는데, 여기에 북한이 한반도를 긴장시킨다면 이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들은 좀더 안전한 곳에 투자하고자 자본을 빼가게 될 것이며, 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아무리 위장이 튼튼하고 다리가 튼튼해도 피가 마르면 몸을 움직일수가 없게 되는것 아닌가?

지금은 갑론 을박 할 때가 아니다. 서로의 밥그릇을 위하여 다툴 때가 아니다. 무슨 일이 서로 마음을 합하고 뜻을 합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서는 여야 뿐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온 백성이 주님께 무릎을 꿇고 주님의 지혜를 구할때다. 어쩌면 주님은 이러한 환경을 통하여서 우리를 부르시는 지도 모른다.

북한을 땅 끝이라며 북한 선교를 위하여, 특히 북한의 문이 열리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도하지만, 그 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우리 먼저 주님 앞에 진정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마치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는 탕자처럼…… 그리고 그 때에 주님은 돌아오는 탕자를 책망하던 맏아들도 회개를 시키실 것이다.

부흥은 가장 어두울때, 세상에 대한 소망이 끊겼을때 주님께 회개하며 돌아오면서 시작됨을 교회사는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이 바로 부흥이 일어날 때가 찼음을 교회사는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합 3:2) 내 스스로가 마치 하박국 선지자라도 된듯 착각하며 이 아침에도 주님 앞에 눈물로 탄원한다.

2 Responses to “예수님의 리더십”

  1. Hands down, Apple’s app store wins by a mile. It’s a huge selection of all sorts of apps vs a rather sad selection of a handful for Zune. Microsoft has plans, especially in the realm of games, but I’m not sure I’d want to bet on the future if this aspect is important to you. The iPod is a much better choice in that case.

  2. Sanne says:

    You’ve impsesred us all with that posting!

Leave a Reply